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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키마이라 리뷰 (진실, 복수, 권력)

by manimong 2026. 2. 21.

목차

    키마이라 문제의 시작점 라이터
    키마이라 문제의 시작점 라이터

    할아버지 유품 정리 중 발견한 낡은 법원 문서 한 장이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1970년대 사기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돼 변상 책임을 졌다는 내용이었지만, 이미 돌아가신 후라 진실을 물어볼 길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선 "그 일 때문에 할아버지가 평생 사람 믿는 걸 두려워하셨어"라고만 하셨습니다.

     

    서류 속 진실의 일부는 남았지만, 전체는 영영 복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키마이라를 보며 그 서류 봉투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진실을 뒤늦게 마주한다는 것이 때로는 아무것도 돌려놓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권력의 민낯을 정면으로 응시하다

    키마이라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닙니다. 1984년 군사정권 시절을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를 쌓아 올립니다. 힘없는 노동자 이상우가 아무런 증거 없이 용의자로 몰리고,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하며, 결국 유치장 안에서 목숨을 잃는 과정은 픽션이 아닌 우리 사회의 실제 역사처럼 느껴집니다.

     

    "공권력이 깡패였으니까"라는 대사 한 줄이 그 시대 전체를 압축합니다. 주석, 함명복, 배승관이라는 세 경찰관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날의 진실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은 인상적입니다. 주석은 괴로움 속에 진실을 감추었고, 함명복은 타인의 허물을 뒤집어쓴 채 해임됐으며, 배승관은 끝까지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믿습니다.

     

    죄의식 없이 자신의 행위를 실수로 포장하는 배승관의 태도는 현실에서도 심심찮게 마주치는 인간 유형이라 더욱 섬뜩합니다. 저는 이 세 인물의 대비가 권력의 폭력성과 인간의 도덕적 타락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지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구조는 촘촘한데 캐릭터의 내면이 아쉽다

    드라마에 아쉬운 점도 분명 존재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중심 캐릭터인 이중엽의 감정선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이름까지 바꾸고 영국에서 한국까지 왔습니다. 이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한 서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가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느꼈을 분노, 슬픔, 혼란이 드라마 안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특수부대 출신의 냉철한 인물이라는 설정이 오히려 그의 감정적 서사를 억누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효경이 키메라로 밝혀지는 반전도 충격적이긴 하지만, 사후에 돌아보면 복선이 충분히 설치됐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화학에 능통한 과학고 출신이라는 사실이 반전 직전에야 나오는 것은 다소 작위적인 느낌을 줍니다. 시청자에게 놀라움을 주려면 반전 이후에 납득이 따라와야 하는데, 그 설계가 조금 더 정교했으면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었을 것입니다.

     

    TH5라는 유해 화학물질을 둘러싼 기업의 은폐 서사는 현실의 여러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연상시키며 강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중반 이후 다소 희석되며 범인 추적 서사에 묻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 고발 드라마로서의 목소리와 스릴러로서의 긴장감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두 축을 균등하게 밀고 나갔더라면 더욱 풍성한 작품이 됐으리라 봅니다.

    진짜 키메라는 누구인가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도 한 가지 의심이 계속 머릿속을 맴돕니다. 효경이 키메라로 밝혀지는 반전은 감정적으로 강렬하지만, 과연 그녀 혼자의 힘으로 35년 전 사건의 패턴을 그토록 정밀하게 재현했을까 하는 물음입니다. 류성이라는 존재가 드라마 내에서 은수와 동일 인물로 밝혀지는 구조 자체는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기억을 잃고 35년을 살아온 여성이 무의식 중에 과거의 범행 방식을 딸에게 전수했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극적이어서 오히려 개연성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형국이 드라마 말미에 새로운 키메라로 등장하며 서연태를 처단한다는 결말도 복수의 사슬은 끊기지 않는다는 주제 의식을 강화하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이 선택이 드라마 전체가 그려온 법과 정의에 관한 질문과 어떤 방향으로 화해를 이루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저는 유진이라는 FBI 출신 프로파일러 캐릭터가 한국에 입양된 인물로 설정된 것이 이중엽과의 거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장치로 읽힌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의 정체성 탐색 서사가 본편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시즌 2가 있다면 유진의 이야기를 더 깊이 파고들었으면 합니다.

     

    전반적으로 키마이라는 탄탄한 세계관과 사회적 메시지를 갖춘 수작입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한국 드라마가 역사적 억압과 개인의 복수, 그리고 정의의 의미를 이처럼 진지하게 다루려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진실은 때로 부서진 채로 남지만, 그것을 복원하려는 시도 자체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보여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_X34MtK5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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