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개봉한 조커는 DC 코믹스의 악당 조커의 탄생 과정을 그린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마틴 스코세이지의 택시 드라이버와 킹 오브 코미디에 대한 오마주에 가깝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을 통해 사회의 균열, 소외된 개인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이 어떻게 폭발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호아킨 피닉스는 이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연기는 영화사에서 가장 강렬한 캐릭터 변신 중 하나로 기록된다. 조커는 불편한 영화다. 우리가 악당에게 감정이입하도록 만들고, 그 감정이입이 옳은 것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든다. 그 불편함이 바로 이 영화의 가장 큰 가치다.
아서 플렉, 그리고 세상이 만들어낸 괴물
히어로 영화의 외피를 벗어던진 조커
조커가 개봉 전부터 세간의 이목을 끈 것은 단순히 DC 코믹스의 유명 캐릭터를 다루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예고편 하나가 공개되자마자 사람들은 직감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던 슈퍼히어로 영화와 완전히 다른 무언가라는 것을. 화려한 특수효과도, 통쾌한 액션도, 선악이 분명히 나뉘는 구도도 없었다. 대신 예고편에는 무너져가는 한 인간의 얼굴이 있었다. 그 얼굴에서 사람들은 낯선 감정을 느꼈다. 연민이었다.
조커는 개봉 후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그 예감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슈퍼히어로 영화가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은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상당한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폭력을 미화한다는 비판, 사회적 약자의 분노를 자극한다는 우려. 그 논란 자체가 이 영화가 얼마나 현실의 신경을 건드렸는지를 말해준다.
토드 필립스가 선택한 불편한 시선
토드 필립스는 행오버 시리즈로 알려진 코미디 감독이었다. 그가 조커를 만든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 의외성이 오히려 이 영화의 강점이 되었다. 필립스는 조커라는 캐릭터에 거리를 두지 않는다. 카메라는 아서 플렉의 시선에 극도로 가깝게 붙어 있고, 관객은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도록 강요받는다.
그 시선에서 보이는 세상은 잔인하다. 아서는 웃음을 멈출 수 없는 신경학적 질환을 앓고 있고, 그 때문에 일상에서 끊임없이 조롱과 폭력에 노출된다. 복지 예산이 삭감되어 상담 치료가 중단되고, 의약품 공급이 끊긴다. 사회가 그를 버리는 과정이 너무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 관객은 그 부당함에 분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분노가 조커의 탄생에 공명하도록 영화는 교묘하게 설계되어 있다.
사회, 소외, 그리고 광기의 탄생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 — 몸 전체로 쓴 비극
호아킨 피닉스는 조커 역할을 위해 약 23킬로그램을 감량했다. 그 앙상한 몸이 아서의 내면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살이 빠진 몸으로 계단을 오르내리고, 거울 앞에서 스스로에게 웃음을 강요하고, 쓰레기통 안에 웅크리는 그 모습들은 단순한 외형 변신이 아니라 캐릭터의 고통을 몸으로 번역한 것이다.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이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특히 영화 중반, 아서가 화장실에서 혼자 춤을 추는 장면은 이 영화 최고의 순간이다. 처음으로 폭력을 행사한 직후, 아서는 지저분한 화장실 안에서 천천히 몸을 움직인다. 그 춤은 기쁨인지 슬픔인지, 해방인지 타락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모호함이 오히려 완벽하다. 호아킨 피닉스는 대사 한 마디 없이 그 복잡한 감정의 스펙트럼 전체를 몸 하나로 표현해냈다. 그 장면을 보고 나면 오래도록 그 움직임이 머릿속을 맴돈다.
고담시는 우리가 사는 도시다
영화 속 고담시는 1970년대 뉴욕을 연상시키는 공간이다. 쓰레기가 넘치고, 범죄가 만연하며, 빈부 격차가 극심하다. 웨인 같은 초부유층은 화려한 파티를 즐기는 동안, 아서 같은 사람들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공간에서 살아간다. 그 대비가 너무 노골적으로 그려지지만, 동시에 너무 현실적이다.
고담시의 설정이 관객에게 강하게 와닿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서의 비극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임을 영화는 계속해서 강조한다. 정신 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지원 시스템의 부재, 소외된 계층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상류층의 오만함. 이 모든 것이 아서를 조커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괴물을 만든 것은 괴물이 아니라 사회라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불편한 메시지다.
조커를 응원하게 되는 순간의 불편함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아서에게 감정이입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를 조롱하고 폭행한 사람들이 당하는 장면에서 일말의 쾌감을 느끼는 자신을. 그리고 그 감정을 느끼는 순간 동시에 불편함이 밀려온다. 내가 지금 폭력에 공감하고 있는 건가. 나는 왜 악당의 편에 서 있는가.
토드 필립스는 바로 그 불편함을 의도했다. 우리가 조커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우리 안에도 세상에 대한 분노와 소외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감정이 폭력으로 표출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영화는 그 경계선 위에 관객을 세워놓고, 스스로 판단하게 만든다. 그것이 조커가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니라 사회적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인 이유다.
조커가 우리 사회에 던진 진짜 질문
이 영화는 폭력을 미화하는가
조커가 개봉했을 때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폭력 미화 논란이었다. 일부에서는 이 영화가 사회적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폭력을 정당화하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일부 극장에서는 경찰이 배치되기도 했다. 그 우려는 완전히 무시하기 어렵다. 아서가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들이 일정 부분 카타르시스적으로 연출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조커는 폭력을 미화하지 않는다. 아서의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는 비극이고, 그가 만들어낸 세상은 더 어둡고 혼란스럽다. 영화는 관객에게 조커에게 공감하는 감정을 허용하되, 그 공감이 폭력의 정당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를 암묵적으로 설정한다. 그 경계를 읽어내는 것은 결국 관객의 몫이다. 그리고 그 판단을 관객에게 맡기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성숙한 예술 작품임을 말해준다.
아서 플렉의 이야기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
조커가 개봉한 2019년 이후 세상은 더 많은 균열을 드러냈다. 팬데믹,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정신 건강 위기의 증가,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소외된 개인들의 분노. 아서 플렉이 살았던 고담시의 모습이 점점 더 현실과 닮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조커는 개봉 당시보다 지금 더 무겁게 다가온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은 단순하다. 우리 주변에 아서 플렉 같은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라는 것이다. 웃음을 강요받으면서도 내면에서 무너지고 있는 사람, 도움을 요청했지만 시스템에서 외면당한 사람, 그리고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조커는 그들을 무시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 경고는 2019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유효하다. 누군가에게 당신이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지 말라. 그것이 조커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