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영화. 그리고 그 사람 중 하나가 나일 수도 있다는 게 진짜 충격이었다, 두 말 하면 입 아프지.
1왜 이 영화를 봤는지 — 좀비물 별로 안 좋아했다
솔직히 말하면 좀비 영화라는 것만으로 관심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워킹데드 같은 것도 조금 보다가 말았고, 좀비 나오는 게임도 잘 못 하는 편이다. 그냥 호러랑 좀비 장르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이유였다. 긴장감이 너무 강한 영화가 취향이 아니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부산행도 한동안 안 봤다. 주변에서 난리가 나도 그냥 지나쳤다.
보게 된 건 친구 때문이었다.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친구인데, "이건 좀비 영화 싫어하는 사람도 본다"고 했다. 그 친구가 그렇게 말하는 게 처음이라 살짝 의아했다. 보통은 "너도 좋아할 거야" 정도인데, 취향 상관없이 봐야 한다는 말이 달랐다. 그래서 보게 됐다. 좀비 나오는 영화가 싫지만, 친구 말은 믿어보기로 했다, 두 말 하면 입 아프지.
보기 시작하고 처음 20분은 좀비가 아예 안 나온다. 그 시간 동안 주인공 석우와 딸 수안의 관계가 설정된다. 아빠가 딸한테 얼마나 무심한지, 딸이 아빠한테 얼마나 서운한지가 짧은 장면들로 쌓인다. 그 20분이 영화 후반부의 충격을 만드는 핵심인데, 나중에 돌아보면 이 20분 없이는 이 영화가 성립이 안 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설계가 무서울 정도로 정교했다.
2보기 전 기대 vs 실제로 본 느낌
기대는 딱 하나였다. 긴장감 있는 영화. 좀비가 나오고 쫓기고 살아남는 그 공식. 거기서 한국식으로 잘 만들어진 거겠지 싶었다. 기차라는 밀폐 공간 안에서 좀비와 맞닥뜨린다는 설정이 흥미롭긴 했지만, 그래봤자 스릴러 장르 영화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감동받을 준비는 전혀 안 하고 봤다는 거다.
근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게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좀비보다 더 공을 들이는 게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누가 문을 열고 누가 문을 닫는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밀어낼 때 그 표정이 어떤지. 이 부분들이 좀비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화면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게 훨씬 더 무서웠다.
"살아남는 게 죄가 아니잖아요."
— 용석의 대사. 이 한 마디가 이 영화에서 인간의 이기심을 대표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이 아닌데, 들을수록 불편하다. 그 불편함이 이 영화가 하고 싶은 거다. — 부산행 (2016)
예상과 가장 달랐던 건 눈물이 났다는 거다. 좀비 영화 보면서 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긴장하다가 끝나겠지 했는데, 중간부터 뭔가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결국 마지막에는 제대로 울었다. 이 영화가 나를 울린 건 좀비가 아니라 사람 때문이었다, 두 말 하면 입 아프지.
3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들
부산행은 장면 하나하나가 강하다. 좀비 액션도 강하고 감정도 강하고 메시지도 강하다. 그중에서 지금도 떠올리면 뭔가가 올라오는 장면 세 개를 꼽자면 이렇다.
영화 중반부, 승객 일부가 다른 칸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문을 막는 장면. 좀비보다 이 장면에서 더 무서웠다. 저 사람들이 나쁜 사람인가? 그렇다고 딱 잘라 말하기도 어렵다. 자기 가족을 지키고 싶은 거니까. 근데 그 선택이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 그 모순이 너무 현실적이었다. 저 상황에서 나는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그 질문이 장면보다 더 무서웠다, 두 말 하면 입 아프지.
상화가 좀비들을 상대로 홀로 버티면서 다른 사람들이 빠져나갈 시간을 버는 장면. 이 장면에서 나는 진짜 울었다. 마동석 배우 특유의 묵직한 존재감 덕분에 이 캐릭터가 살아났다. 상화가 처음 등장할 때는 무뚝뚝하고 거친 인물로 보이는데, 위기 상황에서 드러나는 그 사람의 진짜 면이 이 장면에 다 담겨 있었다. 이 장면 하나로 마동석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됐다.
마지막 장면. 터널 끝에서 군인들의 조준경에 잡히는 순간, 수안이 노래를 부른다. 아빠가 어릴 때 불러준 노래를. 이 장면에서 영화 전체가 완성됐다. 아빠와 딸의 이야기로 시작한 영화가, 그 노래 한 소절로 마무리되는 구조가 너무 완벽했다. 크레딧이 올라오는 동안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두 말 하면 입 아프지.
4연출과 배우 — 이건 장르 영화가 아니었다
연상호 감독은 원래 애니메이션 감독 출신이다. 부산행 전에 만든 작품들이 애니메이션이었는데, 그 작품들도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강한 걸로 유명하다. 그 배경이 부산행에 그대로 녹아 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좀비 액션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는 건, 감독이 처음부터 그걸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밀폐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탁월했다. 기차라는 공간은 앞뒤로만 움직일 수 있고, 칸과 칸이 문으로 나뉜다. 이 물리적 구조가 영화의 갈등 구조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문을 열고 닫는 게 생사를 가르는 선택이 되고, 앞 칸과 뒷 칸의 거리가 계급의 거리처럼 읽힌다. 이 공간 설계가 이 영화를 단순한 스릴러 이상으로 만드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두 말 하면 입 아프지.
공유는 이 영화에서 내가 본 그의 연기 중 압도적으로 좋았다. 석우라는 캐릭터가 처음엔 차갑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시작해서, 극한의 상황을 거치면서 변해가는 과정이 있다. 그 변화의 눈금을 공유가 표정 하나로 다 표현한다. 특히 딸한테 처음으로 진심으로 말하는 장면에서, 그 눈에 뭔가가 차오르는 게 너무 자연스럽게 전달됐다. 이 사람이 변했다는 걸 대사 없이 알 수 있는 연기였다.
마동석의 상화는 이 영화의 숨은 주인공에 가깝다. 처음에 무뚝뚝하고 투박한 캐릭터로 보이다가, 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행동하는 사람이 상화다. 그리고 그 행동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위한 거라는 게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마동석 배우 특유의 신뢰감 있는 체격과 눈빛이 이 캐릭터와 너무 잘 맞았다. 상화가 스크린에 있을 때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5내 나름의 해석 — 좀비는 그냥 배경이었다
이 영화에서 좀비는 사실 주제가 아니다. 좀비는 무대 장치다. 극한의 상황을 만들기 위한 장치. 그 상황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진짜 목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행동들이 너무 현실적이라 불편하다. 재난 영화에서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건 클리셰처럼 보일 수 있는데, 부산행은 그 이기심이 왜 나오는지를 이해하게 만든다. 그게 더 무서운 거다.
용석이라는 캐릭터가 이 영화에서 가장 복잡한 인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데, 그게 단순한 악당처럼 안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저 사람이 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걸 영화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역시 저 상황에서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한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그 확신이 흔들리는 게 이 영화가 남기는 가장 찜찜한 감각이다, 두 말 하면 입 아프지.
반대로 상화가 대표하는 인물형도 있다.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더 인간적이 되는 사람. 자기 생존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이 영화는 두 극단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다 보여주면서 결국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게 이 영화가 좀비 영화 이상인 이유다.
"아빠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 근데 미안해."
— 석우가 딸 수안에게 하는 말. 이 대사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았다. 설명이 없어도 이 한 마디로 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전부 담긴다. — 부산행 (2016), 석우
- 01좀비보다 사람이 무섭다 — 재난이 아니라 재난 속 인간의 선택이 이 영화의 진짜 공포다.
- 02이기심은 악의가 아니다 — 용석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 상황이 이기심을 이길 수 없게 만든다. 그게 더 무섭다.
- 03아버지와 딸의 이야기 — 좀비 영화의 포장 안에 부녀 관계의 회복이 담겨 있다. 이게 이 영화를 단순 장르물과 구분 짓는다.
6결론 + 추천 대상
결론은 이거다. "좀비 영화 싫어하는 사람도 봐야 하는 좀비 영화." 나처럼 좀비 장르를 피해온 사람한테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좀비는 무섭지만 그게 핵심이 아니라는 걸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증명한다. 핵심은 그 안의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이 나와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불편하고, 그 불편함이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한국 영화에서 이 정도 장르 완성도와 감정 깊이를 동시에 가진 작품이 많지 않다. 부산행이 개봉 이후 몇 년이 지나도 계속 언급되는 이유가 있다.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있고, 보고 나서 한동안 생각이 남는 질문이 있다. 그게 좋은 영화의 조건이라고 하면, 이 영화는 그 조건을 전부 충족한다, 두 말 하면 입 아프지.
- ✔ 좀비 영화 싫어하는 사람 — 오히려 이 영화가 시작점이 될 수 있다
- ✔ 위기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에 관심 있는 사람
- ✔ 감정이 터지는 영화를 원하는 사람 — 긴장감과 감동이 동시에 온다
- ✔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궁금한 사람 — 이 영화로 이 배우를 다시 보게 된다
- ✔ 한국 영화의 장르적 완성도가 궁금한 사람
- ✔ 아버지와 자녀 관계에 대해 뭔가 느끼는 게 있는 사람
영화를 보고 나서 한 가지가 달라졌다. 위기 상황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가끔 생각한다.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편하게 생각하기 어렵다는 게 솔직하다. 근데 그 질문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뭔가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부산행이 나한테 준 게 그거다, 두 말 하면 입 아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