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소마 리뷰
낮에 더 무서운 영화
기존 공포 영화 공식을 완전히 깨는 작품 — 이별, 치유, 그리고 민속 공포
미드소마를 보게 된 경위
이 영화는 사실 좀 망설였습니다. 공포 영화를 그렇게 즐겨보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러닝타임이 147분이라는 것도 부담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이건 보통 공포 영화랑 달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고, 특히 "낮에 촬영했다"는 말이 호기심을 건드렸습니다. 공포 영화가 낮에? 그게 무서울 수 있나 싶었거든요.
제가 직접 봤는데, 어둠이 없는 공간에서 공포가 시작된다는 게 이 영화를 기존 공포 영화와 완전히 다르게 만드는 핵심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오히려 너무 밝아서 '이게 무서운 영화 맞나?' 싶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밝음이 오히려 더 섬뜩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숨을 곳이 없잖아요. 어두운 데 숨을 수가 없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 왜 더 무서운지,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정리가 됐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감독의 전작인 '헤레디터리'를 먼저 봤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리 에스터가 어떤 방식으로 공포를 만드는 사람인지를 알고 미드소마를 봤다면, 처음 20분의 당혹감이 훨씬 빨리 정리됐을 것 같습니다. 다만 아무것도 모르고 봤기 때문에 오히려 더 순수하게 충격받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이라는 사람
아리 에스터는 헤레디터리(2018)로 데뷔한 감독입니다. 데뷔작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았고, 미드소마는 그 두 번째 장편입니다. 두 영화 모두 공포 장르이지만 일반적인 공포 영화와는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는 공포를 '감각의 자극'이 아니라 '감정의 붕괴'로 만드는 감독입니다.
미드소마는 아리 에스터가 실제로 오랜 연인과 헤어진 직후에 쓴 시나리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다니가 겪는 감정적 여정이 너무 생생하고 구체적입니다. 주인공이 겪는 이별과 상실, 그리고 그 이후의 처리 과정이 공포적 설정과 뒤섞이면서 영화가 단순한 호러를 넘어섭니다.
"나는 공포를 장르로 쓰지만, 공포 영화를 만들려고 한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가장 취약해지는 순간을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그 취약함이 공포와 연결될 때 더 진실해집니다." — 아리 에스터, 미드소마 감독 인터뷰
에스터는 스웨덴의 민속 축제 '미드솜마르(Midsommar)'를 배경으로 선택했는데, 이게 굉장히 의도적인 선택입니다. 실제로 스웨덴에서는 하지 즈음에 밤이 거의 없는 시기가 있고, 그 백야 기간의 축제가 미드솜마르입니다. 어둠이 없는 공간에서 공포가 펼쳐지는 설정은 이 문화적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그가 이 배경을 선택한 것 자체가 이미 연출의 시작입니다.
에스터의 공포는 '뭔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대신 처음부터 모든 것이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이상함이 구체적으로 뭔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불편함 안에 관객을 오랫동안 가둬둡니다. 그리고 그게 일반적인 점프스케어보다 훨씬 오래 가는 공포를 만들어냅니다.
기존 공포 영화와 뭐가 다른가
공포 영화를 떠올리면 어두운 복도, 갑자기 들리는 소리, 안 보이는 위협 같은 것들이 먼저 생각납니다. 미드소마는 그 반대입니다. 모든 것이 보이고, 모든 것이 밝고,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 안에서 끔찍한 일들이 너무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벌어집니다.
- 어둠, 밤, 좁은 공간
- 갑자기 나타나는 위협
-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
- 도망칠 방향이 보인다
- 끝나면 해방감이 온다
- 밝음, 낮, 열린 공간
- 모든 것이 보이는 공포
- 아는데도 막을 수 없는 공포
- 어디로 도망쳐도 탈출 불가
- 끝나도 잔상이 며칠간 남는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오냐면, 미드소마의 공포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공동체의 논리'에서 온다는 데 있습니다. 호르가 마을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완벽하게 논리적이고 심지어 따뜻합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관객은 '저러면 안 되는데'를 외치면서도 그들의 논리를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됩니다. 그게 가장 섬뜩한 지점입니다.

촬영 기법 — 밝음이 만드는 공포
미드소마의 촬영 기법은 이 영화의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촬영감독 파비안 바그너(Pawel Pogorzelski, 사실은 폴란드계 미국인 촬영감독)의 선택 하나하나가 에스터가 의도하는 감각을 시각적으로 완성합니다.
내가 본 관점 — 이별과 치유
내가 본 관점은 '이별과 치유'였습니다. 이 영화는 공포 영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저에게는 한 여자가 감당할 수 없는 상실을 겪은 뒤 그것을 처리해나가는 과정으로 보였습니다. 주인공 다니는 영화 시작 전부터 이미 가족을 모두 잃었고,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이미 균열이 와 있습니다. 스웨덴으로 떠나는 여정은 탈출이자 도피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가장 이상하고 논쟁적인 부분은 결말입니다. 호르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명백히 끔찍하고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근데 다니의 마지막 표정은 해방입니다. 그 미소가 무섭고 슬프면서 동시에 이해가 됩니다. 영화 내내 아무도 그녀의 감정에 제대로 공감해주지 않았는데, 호르가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그 공동체가 끔찍한 방식으로 작동하면서도 다니에게 처음으로 진짜 공감과 소속감을 줬습니다.
이별이나 상실을 경험한 적 있는 분이라면 다니에게 감정 이입하는 순간이 분명히 옵니다. 아무도 내 감정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느낌,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다는 욕구. 그게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이 영화는 공포라는 포장지에 싸서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이별 후에 보면 더 와닿는 영화'로 알려진 게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결론과 별점
미드소마는 쉽게 추천하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잔인한 장면들이 있고, 러닝타임이 길고, 끝나고 나서도 불편함이 오래 남습니다. 근데 그 불편함이 의미 있습니다. 단순히 자극적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리기 때문에 불편한 겁니다.
공포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오히려 공포 영화 팬보다 심리 드라마나 인간 관계를 다루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더 잘 맞을 수 있습니다. 단, 잔인한 장면에 민감하신 분들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공포 영화 추천 목록
미드소마처럼 일반적인 공포 문법을 벗어난 영화들을 골랐습니다. 자극보다 감각과 감정으로 공포를 만드는 작품들입니다.
🎬 헤레디터리 (Hereditary, 2018) — 아리 에스터
같은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미드소마보다 훨씬 더 어두운 톤으로 가족의 비극과 상실을 다룹니다. 미드소마를 봤다면 헤레디터리를 꼭 함께 보세요. 두 영화가 아리 에스터라는 감독을 완성시키는 쌍이라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 더 위치 (The Witch, 2015) — 로버트 에거스
17세기 청교도 가족이 숲 가장자리에 정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미드소마처럼 공동체와 신앙이라는 요소가 공포의 근원이고, 점프스케어 없이 분위기 자체로 공포를 만드는 방식이 비슷합니다. 고어 없이 섬뜩한 영화를 원하신다면 강력 추천합니다.
🎬 겟 아웃 (Get Out, 2017) — 조던 필
미드소마와 마찬가지로 겉으로는 아름답고 환영하는 듯한 공동체가 실은 끔찍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구조를 가집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이질적인 공동체 안에 갇히는 공포'라는 주제가 두 영화를 연결시킵니다.
🎬 어스 (Us, 2019) — 조던 필
밝은 공간에서 공포가 펼쳐진다는 점에서 미드소마와 닮아 있습니다. 낮에 해변에서 시작되는 공포가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는지를 보면서 미드소마와 비교하는 재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