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예쁜 뮤지컬 영화인 줄 알았다. 끝나고 나서는 한참 동안 "나는 지금 뭘 포기하고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그거 알아?
1왜 이 영화를 봤는지 —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나는 원래 뮤지컬 영화를 잘 못 본다. 대사하다가 갑자기 노래하고 춤추면 몰입이 깨진다는 느낌이 싫다. 레미제라블도 중간에 좀 힘들었고, 맘마미아는 솔직히 너무 어색했다. 그래서 라라랜드도 뮤지컬 영화라는 것만으로 한동안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다. 좋은 영화라는 건 알지만 내 취향은 아니겠지 싶었다.
보게 된 계기는 이상하게도 음악 때문이었다. 유튜브에서 "City of Stars" 피아노 커버 영상이 알고리즘에 떴는데, 그 곡이 너무 좋았다. 뭔지 모르고 한참 들었다가 라라랜드 OST라는 걸 알고, 이 음악이 나오는 영화라면 한 번 봐도 괜찮겠다 싶었다. 음악이 먼저 마음에 들어서 영화를 보게 된 거다. 순서가 좀 달랐다.
보기 시작한 날이 마침 뭔가 결정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직장 관련된 고민이 있었는데,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계속 갈팡질팡하던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타이밍에 이 영화를 본 게 참 묘했다. 영화가 정확히 그 질문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거 알아?
2보기 전 기대 vs 실제로 본 느낌
기대는 딱 두 가지였다. 예쁜 화면이랑 좋은 음악. 이 두 가지만 건지면 된다고 생각했다. 감동을 받거나 무언가를 깊이 느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라이언 고슬링이랑 엠마 스톤이 예쁘게 나오고 노래하고 춤추다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해피엔딩이면 기분 좋고, 아니면 말고 같은 심정이었다고 해야 하나.
근데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밝은 색채와 신나는 음악이 가득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밝은 것들이 조금씩 빠지고 현실적인 질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꿈이냐 사랑이냐. 지금 함께 있는 것과 나중에 원하는 것 중 뭘 택해야 하느냐. 그 질문이 영화 안에서만이 아니라 나한테도 던져지는 것 같았다.
"여기는 꿈꾸는 사람들의 도시야. 부서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도시이기도 하고."
— 영화 초반 나레이션. 처음 들을 땐 그냥 예쁜 대사라고 생각했는데, 끝나고 나서 다시 떠올리면 이미 결말을 예고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 라라랜드 (2016)
예상과 가장 달랐던 건 이 영화가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거였다. 두 사람이 결국 함께하지 않는다는 결말이, 처음엔 배신감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예쁘게 만들어놓고 왜 이렇게 끝내?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결말이 이 영화를 완성시키는 핵심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해피엔딩이었으면 이 영화가 지금처럼 기억에 남지 않았을 거다, 그거 알아?
3아직도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장면들
라라랜드는 장면 하나하나가 그림처럼 남는다. 색감이 강하고 음악이 강해서 기억에 각인되는 방식이 다른 영화들과 다르다. 그중에서도 세 장면이 지금도 선명하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천문대에서 공중으로 떠올라 별 사이를 걷는 장면. 현실이 아니라 두 사람의 감정 안에 들어간 것 같은 그 장면이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현실이랑 판타지의 경계가 지워지는 그 순간, 음악이 그 감정을 완벽하게 받쳐주는 방식이 너무 좋았다. 이 장면 보고 나서 "아, 이래서 뮤지컬 영화를 만드는 거구나"를 처음으로 이해했다.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그거 알아?
미아와 세바스찬이 레스토랑에서 서로의 꿈에 대해 다투는 장면. 이 장면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 모두 잘못이 없다. 자기 꿈을 향해 가려는 세바스찬도 맞고, 그 과정에서 혼자 남겨지는 느낌을 받는 미아도 맞다. 둘 다 맞는데 상처가 생긴다. 이 장면이 특히 불편하게 느껴진 건, 나도 어떤 관계에서 이 두 사람 중 하나였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었는지는 솔직히 말하기 어렵다.
영화 마지막, 세바스찬의 재즈 클럽에서 미아가 그를 발견하는 순간. 그리고 피아노 소리와 함께 펼쳐지는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의 상상. 두 사람이 함께했을 인생이 아주 짧게 펼쳐졌다가 사라진다. 이 장면에서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슬프다기보다는 뭔가 아득한 느낌.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삶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 그 삶이 눈앞에서 깜짝 보였다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거 알아?
4연출과 배우 — 데이미언 셔젤이 만든 세계
데이미언 셔젤 감독 하면 위플래쉬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두 영화가 완전히 반대처럼 보이면서도 같은 질문을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걸 희생할 수 있는가. 위플래쉬가 그 질문을 고통으로 담았다면, 라라랜드는 아름다움으로 담았다. 그 아름다움이 오히려 더 슬픈 이유가 있다. 예쁜 걸 잃어버리는 게 더 아프니까.
색채 설계가 이 영화의 첫 번째 언어다. 초반부는 원색에 가까운 강렬한 색들이 화면을 채운다. 노란 드레스, 파란 재킷, 빨간 드레스. 그 색들이 중반부를 지나면서 조금씩 바래기 시작하고, 후반부에는 훨씬 차분하고 현실적인 색조가 된다. 이게 말 없이 이 영화가 낭만에서 현실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색이 이야기를 한다는 게 이런 거라는 걸 라라랜드에서 제대로 느꼈다, 그거 알아?
엠마 스톤은 이 영화의 무게를 혼자 지탱하는 배우다. 미아라는 캐릭터가 오디션에 계속 떨어지고,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과정이 담겨 있는데, 그 반복되는 실망과 또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엠마 스톤이 너무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특히 혼자 오디션에서 부르는 장면, "Audition (The Fools Who Dream)"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퍼포먼스였다. 그 장면에서 마이크 없이 감정만으로 가득 채우는 게 느껴졌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당연했다.
라이언 고슬링은 진짜 피아노를 쳤다. 이 영화를 위해 수개월간 피아노 연습을 했다는 게 화면에서 보인다. 그의 손이 건반을 치는 장면이 클로즈업될 때 그게 대역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데, 그 진정성이 세바스찬이라는 캐릭터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겹쳐진다. 재즈를 지키려는 사람으로서의 설득력이 연기와 연주 양쪽에서 동시에 나온다.
5내 나름의 해석 — 해피엔딩이 아니어서 진짜였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결말이 불만스러웠다. 왜 두 사람이 함께하지 않는가. 다 잘됐는데, 꿈도 이루고 성공도 했는데, 왜 서로가 아닌가. 그 의문이 한동안 남아 있었다. 근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 결말이 이 영화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선택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꿈과 사랑을 둘 다 완전하게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딘가에서 균형을 맞추려면 어느 쪽을 조금씩 깎아야 한다. 미아는 연기를 선택했고 세바스찬은 재즈 클럽을 선택했는데, 그 선택들이 맞지 않는 방향으로 커나간 거다. 이게 두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그냥 선택의 결과다. 그리고 그 결과가 완전히 행복하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그거 알아?
마지막 상상 장면이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만약 그때 다르게 했더라면"이라는 상상을 두 사람 모두 가지고 있다는 걸 영화가 보여준다. 근데 그 상상 속에서도 두 사람이 함께한 삶이 완전히 행복한 것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선택을 달리 했어도 뭔가 다른 걸 잃었을 거라는 걸 암시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도 항상 무언가를 포기한다. 이게 이 영화의 진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 Here's to the fools who dream.
- 01꿈과 사랑은 함께 완벽할 수 없다 — 이 영화는 그 불가능함을 아름답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솔직하게 인정한다.
- 02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그리움 — 마지막 상상 장면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삶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감각을 준다. 그 감각이 슬프고 아름답다.
- 03색이 이야기가 된다 — 라라랜드는 대사보다 색과 음악이 더 많은 말을 한다. 그 언어를 읽으면 이 영화가 두 배로 보인다.
6결론 + 추천 대상
결론부터 말하면 이거다.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가 아니라 선택에 관한 영화다." 뮤지컬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루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유로 미루지 않았으면 한다. 이 영화에서 뮤지컬 형식은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일 뿐이고, 전달되는 내용은 매우 현실적이고 매우 개인적이다.
꿈이 있는 사람, 혹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한테 이 영화는 특히 다르게 읽힌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내 방향이 달라지는 것 때문에 불안한 사람. 이 영화가 그 감각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그거 알아?
OST는 따로 찾아서 들어보길 권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음악을 먼저 들어도 좋고, 보고 나서 들어도 좋다. "City of Stars"를 영화 보기 전에 들었을 때와, 보고 나서 들었을 때 완전히 다른 곡처럼 들린다는 걸 경험해보면 이 영화가 음악을 어떻게 사용했는지가 실감난다.
- ✔ 뮤지컬 영화 싫어하는 사람 — 이 영화는 예외가 될 수 있다
- ✔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
- ✔ 아름다운 화면과 음악이 동시에 필요한 날
- ✔ 해피엔딩보다 진짜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
- ✔ 오래된 관계나 선택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 ✔ "City of Stars"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 — 그 곡이 어떤 맥락인지 알고 싶다면
영화를 보고 나서 생긴 변화 하나. 뭔가를 선택할 때, 내가 포기하는 것들을 더 의식적으로 보게 됐다. 어떤 선택이든 잃는 것이 있고, 그걸 모른 척하는 게 선택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걸 라라랜드가 알게 해줬다. 그리고 그 잃는 것들에 대해 가끔 슬퍼해도 된다는 것도. 그게 이 영화가 내게 준 가장 큰 것이었다, 내마음 알지?